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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폭동

노사랑빛나리 2023. 5. 11.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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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폭동

 

어제자 정통우파TV 라이브 방송에서 4.19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우선 4.19에 대해서는 12년 전 지만원 박사님께서 뉴데일리에 기고하신 칼럼을 먼저 복습하도록 하자.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1/04/21/2011042100062.html

 

4.19 불지른 대구폭동 간첩

4.19세력↔이승만, 누가 민주주의 건설?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     역사 모르는 4.19세력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에서 악전고투할 때 소련은 미국의 끈질긴 요청에도 참전하지

www.newdaily.co.kr

 

 우선 김주열 학생이 눈에 최루탄이 박혀 죽은 것도 빨갱이들이 다 꾸며 낸 것이고, 최루탄은 곡사로 쏘지 사람 눈에다 대고 그렇게 직사로 쏘지 않는다. 빨갱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시체를 먹고 사는 집단이다. 그리고, 그렇게 혈기 가지고 데모질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한 일은 오로지 이승만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4.19 폭동에 가담했던 사람들 중 일부도 이승만 대통령이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인정했겠는가? 김경재 총재와 조갑제 대표를 위시한 여러 애국 유튜버들과 뉴데일리 같은 여러 애국 언론에서도 이를 다룬 바 있다.

 

이승만과 4.19 세력은 같은 세력

 

좀 아이러니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4.19 세력은 역설적으로 봤을 때 놀랍게도 같은 세력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초등학교 의무교육제 덕분에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운 학생들이 4.19 의거를 일으킨 것이라는 말이다. 조갑제 대표도 지적했듯이,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상 천지에 자신을 타도하라고 가르치는 독재자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3.15 부정선거와 4.15 부정선거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한 게 아니라 이승만 박사 몰래 이기붕이 독단으로 벌인 일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4.19가 터지기 전까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875년생으로, 1960년 당시 한국 나이로 86세, 만 나이로 85세의 고령이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다 늙어서 갈 때가 다 돼서 골골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돌아가시면 대통령 유고 시 그 자리를 누가 이어 받는가? 부통령이 이어받는 것 아닌가? 이승만 제1공화국 시절 대한민국의 정치 제도는 미국과 상당히 유사했고, 미국 역시 이승만 제1공화국 시절과 마찬가지로 정-부통령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임기를 다 마치기 전에 죽거나 불명예 퇴진하면 바로 부통령이 그 자리를 이어 받는다. 이기붕이 바로 그걸 노리고 이승만 대통령 돌아가시면 자기가 권력 승계받아서 대통령 해 먹으려고 이승만 박사 몰래 독단으로 3.15 부정선거를 저지른 것이다. 굳이 李 박사의 잘못이 있다면 측근 관리 똑바로 못 한 죄밖에 없다. 물론 이승만 자체는 매우 훌륭한 지도자였으나, 그의 용인술은 솔직히 말하자면 박근혜와 더불어 역대 대통령 중에 최악이었다. 이승만도, 박근혜도 둘 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가 터지고 나서 부상자들의 병문안을 가서 "불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장하다, 장해!""창피해, 창피해, 내가 창피해......"라며 오열하며 4.19 부상자들을 위로했고, 3.15 부정선거는 본인의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4.19가 터진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책임지고 스스로 물러나 하와이로 떠나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다가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이승만 대통령이 6.25 때 다리를 끊고 하와이로 도망갔다고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승만 박사가 6.25 때 다리 끊고 도망간 곳은 하와이가 아니라 부산이었고, 하와이로 간 건 4.19 때 얘기다. 이승만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여러분들의 자유지만, 똑바로 알라는 얘기다. 그 도망간 것도 사실 본인이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부하들한테 등 떠밀려서 마지못해 간 것이고,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내려간 바로 다음 날에 서울이 함락된 걸 생각하면 오히려 더 빨리 빠져나갔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빠져나간 게 큰 실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말년을 보내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늘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가 하와이에서 말년에 했던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유명하다.

 

 반면, 3년 전 벌어진 4.15 총선 부정선거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책임이 너무나도 명백하고, 중공, 북괴 등 외세까지 끌어 들였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더욱 더 악랄하고 불량하다. 홍준표의 경우는 지금이 무슨 자유당 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부정선거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주장하지만, 3.15 부정선거는 아날로그 부정선거고, 4.15 부정선거는 디지털 부정선거라는 점에서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변희재 역시 3.15 부정선거는 명확한 거라면서 대놓고 4.19 폭동을 미화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더 명확한 4.15 부정선거는 부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https://m.cafe.naver.com/mediawatchkorea/298304

 

3.15 부정선거는 명확한 겁니다.

4.19에 김일성도 개입을 해들어왔겠지만 그렇다 해도, 저건 3.15 부정선거가 명확하여, 그에 분노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게 맞지요. 내가 그래서 5.18도 북한 ...

cafe.naver.com

 

 여기에 5.18 북한군 개입 여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며 5.18 북한군 개입까지 부정하는 건 덤이다. 3.15 부정선거를 인정한다면 4.15 부정선거도 인정해야 정상 아닌가?

 

 사실 이승만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2.28-3.15-4.19 폭동도, 박정희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YH 폭동-부마반란-10.26-12.12-사북사태-광주사태도 둘 다 북괴 김일성이 기획한 한 세트의 기획물이었다. 만약 4.19가 혁명이라면 그것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같은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이다. 박근혜 탄핵 촛불난동도 마찬가지고. 혁명이라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4.19 혁명(?)이 성공하고 나서, 저들이 바라던 완전한 민주화가 이루어졌던가? 아니, 4.19 이후 벌어진 사회의 혼란(anarchy)은 이승만보다도 더 강력하고 권위주의적인 군부 독재자 박정희를 불러 들였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관계

 

물론 이승만 대통령도, 박정희 대통령도 두 분 모두 훌륭한 대통령이고 자유우파의 상징적인 존재들이지만, 사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개인적 관계는 별로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우 나빴다. 박정희 대통령의 "독립운동가? 나라 망신시킨 자들" 발언도 사실 이승만을 겨냥한 것이었고, 박정희는 자기 자서전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을 여러 번 깠다. 박정희 대통령은 백범 김구 선생이 만주군에 위장 침투시킨 비밀 광복군, 즉 김구의 부하였고, 그래서 그 인연이 쭉 이어져서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장군 또한 5.16 혁명에 적극 가담하고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한 자리 해 먹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는 바로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업적을 폄훼하고 김일성과 짜고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한 빨갱이 테러리스트 김구를 영웅으로 띄운 것이다. 그 결과, 부국 대통령인 자신 또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함께 빨갱이들에 의해 억울하게 친일 매국노에 독재자로 몰려 공격받고 있다. 백범기념공원을 조성하고 백범 김구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한 게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朴 대통령이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를 통해 대독하게 한 이승만 대통령 추도사는 사실 립서비스였고, 그 정도 립서비스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귀국을 막고 4.19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어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게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비단 4.19 정신뿐만 아니라, 아예 모든 역사적 사건 자체를 헌법 전문에서 다 빼 버리는 게 난 맞다고 본다. 세계 어디에도 어떠한 역사적 사건을 헌법 전문에 넣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힘당 나리들 역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고 광주 홍어족들에게 아양을 떨며 박정희 대통령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승만과 박정희를 동시에 존경하는 이유는 첫째,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업적과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 업적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고, 둘째,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 역시 이승만 대통령의 노선을 상당 부분 계승했기 때문이다. 이영훈 교수도 지적했듯이,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을 싫어했지만, 놀랍게도 박정희야말로 이승만 건국 정신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였다. 원래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을 몰아내려고 쿠데타를 기획했었으나, 4.19 때문에 못 했고, 그게 미뤄지고, 미뤄지고, 또 미뤄져서 마침내 1961년 5월 16일 5.16 혁명을 하게 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4.19 기념사의 의미

 

 변희재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4.19 63주년 기념사를 단순한 술주정 수준으로 폄훼했는데, 물론 尹 대통령이 역사 공부와 이념 공부가 부족해서 4.19가 그로부터 14년 전 대구 10.1 폭동을 주도한 남로당 빨갱이 이석의 배후 조종 하에 남빨들이 김주열의 시체를 팔아 일으킨 무장내란폭동이라는 점을 짚어 내지 못한 점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민주화 운동 제대로 하지도 않았으면서 어줍잖게 민주 투사 코스프레 하는 자칭 민주 투사, 즉 가짜 민주 투사들, 즉 다시 말해 586 주사파 운동권 빨갱이들의 위선을 비판하고 민주당 빨갱이들의 이정근 돈 봉투 게이트와 각종 性 추문 사건을 꼬집은 점이 눈 여겨 볼 만 하다. 조갑제 대표와 윤창중 선생도 지적했듯이, 이건 절대 변희재 식으로 단순 술주정뱅이의 술주정 수준으로 폄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는 제주 4.3과 광주 5.18뿐만 아니라 4.19도 4.19 인민봉기라고 기념하고, 4.19 폭동을 자신들이 배후 조종했다고 대놓고 선전하고 있으며, 북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남조선의 모든 민주화 운동은 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다 나와 있으니, 고로 남한의 모든 민주화 운동은 다 북괴의 사주를 받아 일으킨 빨갱이 공산폭동으로 봐도 무방하다.

 

2023.05.11.

노사랑빛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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